광주웨딩박람회에서 예산도 정신도 놓고 옴

“잠깐만 보고 나오자”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지 몰랐다. 주말 데이트 겸 가볍게 다녀온다고 했던 광주웨딩박람회, 결과는… 예산도 정신도 놓고 오는 초대형 지출의 시작이었다. 결혼 준비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민한 일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된 하루였다.

처음부터 우리는 큰 기대 없이 출발했다. “요즘 광주웨딩박람회 가면 사은품도 많이 주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더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 신청한 거였다. 사전예약을 해두면 입장도 빠르고 기념품도 더 챙겨준다고 해서 미리 예약하고 도착하니,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 다들 우리처럼 뭔가 알아보러 온 예비부부들이었다. 괜히 든든한 느낌?

입장하자마자 다양한 업체들의 부스가 쫙 펼쳐져 있었다. 드레스, 스튜디오, 메이크업, 예물, 예복, 웨딩홀, 신혼여행, 심지어 한복과 한우 선물세트까지 없는 게 없었다. 처음에는 “우린 스드메만 슬쩍 보고 가자” 했는데, 이게 웬걸. 부스 하나하나 지나칠 때마다 “고객님, 상담만 하셔도 사은품 드려요~”, “예쁜 드레스 사진만 구경하고 가세요~” 하며 붙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손에는 상담자료와 사은품 봉투가 한가득. 이게 시작이었다. 스드메 상담을 받다 보니 업체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견적도 천차만별이었다. “이건 계약해도 되겠다” 싶어진 순간, 직원분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지금 계약하시면 추가 할인에 식전 영상 서비스까지 넣어드릴게요. 오늘만 가능한 조건입니다.”

이 말을 듣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도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웨딩홀도 상담만 받아보세요. 저희랑 연계된 곳도 많아서 혜택 드릴 수 있어요”라는 말에 또 한 번 이끌려가고, 그렇게 또 한 번 상담, 또 한 번 비교, 또 한 번 예산 계산. 그런데 이쯤 되니 계산이 안 된다. 정신이 아찔하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는 휴대폰 사진첩에 드레스 사진 수십 장, 메이크업 샘플, 신혼여행 리플렛, 한복 견적서까지 잔뜩 저장돼 있었고, 손에는 계약서 한 장과 기념품이 가득 든 쇼핑백. 예산은 이미 처음 세웠던 선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돌아와서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박람회라는 공간이 결혼 준비 초보인 예비부부들에게는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곳이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비교와 분석이 필수인데, 현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현장 특유의 분위기, “오늘만 드리는 혜택”이라는 말, 옆에서 계약하는 다른 커플들… 모든 요소가 소비를 부추긴다.

하지만 반대로, 박람회를 안 갔으면 몰랐을 좋은 업체들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드레스 라인이나 메이크업 스타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비교할 수 있었고, 한자리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던 건 분명 장점이었다. 특히 전통 혼수나 신혼가전 관련 부스는 부모님과 함께 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은?

광주웨딩박람회, 분명 유익한 자리였다. 다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지출 폭탄’ 맞기 딱 좋은 곳이다. 아래는 나름의 교훈을 정리해봤다:

  1. 방문 전 예산 설정은 필수. 안 그러면 그 자리에서 휘둘리게 됨.

  2. 계약은 무조건 비교 후에. 한 군데 상담받고 바로 계약 NO!

  3. ‘오늘만 가능’이라는 말은 다 믿지 말 것. 진짜 혜택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마케팅 전략임.

  4. 사전예약하고 가자. 입장 빠르고 사은품도 득템 가능.

  5. 체력도 준비하자. 오전에 가서 점심 먹고 오후까지 도는 코스가 적당.

결혼 준비는 평생 한 번이라 더 신중해야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선택의 연속이다. 광주웨딩박람회는 그 점을 단번에 체감하게 해준 날이었다. 예산은 넘겼지만, 정신 놓고 돌아온 그날 덕분에 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긴 했다. 한마디로, 경험값은 톡톡히 치렀다.

다음엔 계약은 미루고 정보 수집만 하고 오는 쪽으로 작전 변경… 과연 가능할까?